왜 오명진인가
행복을 주는 사람, 소울닥터의 지나온 이야기.
스무 살 청년의 마음은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캠퍼스를 누비며 미래를 다짐하는 마음들. 일반 대학생에게는 4년의 시간이지만, 의대생은 사명감의 무게가 더해져 6년의 시간을 달려야 한다.
의대생 오명진의 앞에 자신의 진료 과목을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선택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함께 공부하던 동기의 부친이 한국에서 손꼽히는 의사였는데, 그의 아버지 같은 마음과 선배 의사로서의 적절한 조언에 감화되어 이미 내과 전문의가 되기로 굳게 다짐한 상태였다.
내과는 인간의 생로병사에 있어 가장 끝자락에 있는 진료과로서 심리적으로도 녹록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제 막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초보 의사에게 죽음을 앞둔 환자와 대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레지던트로 중환자실에 근무할 때는 몇 날 며칠을 환자의 곁을 지키며 앉아있기도 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환자의 곁에서 의사 오명진은 신경이 날카로울 수 밖에 없었다. 진료를 시작하고 의사로서 처방전을 내리면서도, 자신의 선택이 잘한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질병의 치료에만 머물렀던 그의 기준은, 죽음의 무게를 알게 된 이후로 환자 본연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의사로서의 본분이 단순히 사람들의 아픔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행복을 찾아주는 것임을 자각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러브콜이 쇄도했던 리즈시절, 그리고 운명적인 선택.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시절, 사람의 삶과 행복을 해치는 요소 중에서도 특히 안티에이징과 비만에 관심이 많았던 오명진은 이와 관련된 논문들을 샅샅이 뒤져가며 공부에 집중했다. 특히 비만은 내분비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전문의 면허 합격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강남 일대에 1세대 성형외과들이 범람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성형 뿐만 아니라 미용 목적의 피부, 비만 진료를 찾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고, 안티에이징과 비만에 누구보다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중보건의로서 누구보다 많은 환자를 만나고, 수 많은 진료 데이터를 가진 그의 주위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당연히 대학 병원에 남으라는 권유도 받았다. 내과 의사로서 평판이 워낙 좋았기에 빠르게 개원을 권하는 선배 의사들도 많았다. 그저 마음만 먹으면 현재의 위치에서 오명진의 앞길은 탄탄대로가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수 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고 토론하며 공부했던 안티에이징과 비만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자신의 의사로서의 본문이 사람의 삶과 행복을 찾아주는 것이라면, 안티에이징과 비만이야말로 그에 가장 가까운 해답이 아닐까 마음속 갈등이 요동쳤다. 남부럽지 않은 안정된 미래를 영위할 것인가. 안티에이징과 비만의 길을 개척하는 도전자가 될 것인가. 당시는 그조차도 본인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몰랐겠지만, 결국 그 운명적인 선택의 결과물이 바로 메종프리베라고 할 수 있다.
압구정 1세대 클리닉, 더 에스(The S.)를 개원하다.
공중보건의 근무를 끝마치고 선택이 미뤄지면서 백수 아닌 백수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어느 병원에서 비만 진료 전문의를 찾고 있다는 소식에 기회를 잡았다. 물 만난 고기가 헤엄을 치듯 밀려드는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하는 데도 오명진 원장은 지치지 않았다. 그때 얼마나 많은 환자를 만났는지 지금 그의 양손은 비대칭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방분해주사를 놓을 때 자주 쓰는 오른손 엄지손가락 아래 부분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 환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방법과 의사로서의 센스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였기에, 손에 변형이 올 정도의 시술 기회는 경험이라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병원에 근무하면서도 학회에 나가 새로운 치료법과 미용 트렌드를 파악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던 그에게 ‘비수술 미용 성형’이라는 용어가 들려왔다. 일명 ‘쁘띠(Petit) 성형’이라고 불리는 필러와 보톡스, 그리고 현재는 오명진 원장의 상징적인 시술로 자리매김한 실 리프팅과 같은 것들이었다. 이러한 비수술 성형은 칼을 쓰지 않는 대신 주사와 실을 쓰기 때문에, 환자의 지방과 근육을 손 끝으로 느끼는 감각이 매우 중요했다.
앞서 말했듯 손에 변형이 올 정도로 숱한 주사 시술을 집도했던 오명진 원장은 같이 시작한 의사들보다 훨씬 빠르게 적응했다. 뿐만 아니라 시술 후 결과가 눈에 띄게 좋았기 때문에 학술과 테크닉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성형에 이어 미용 목적의 피부 시술을 목적으로 하는 병원들이 슬그머니 강남 일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 시점에, 자신의 첫 번째 전성기를 직감한 오명진 원장은 압구정 한복판에 ‘더 에스 클리닉(The S. Clinic)을 개원했다. 2005년 여름의 일이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처음 오명진 원장과 마주한 사람들은 봇물 터지듯 원하는 것을 쏟아냈다. 이를 다 말하고 나면 그는 “왜요?”라고 묻는다. 그 말은 그것을 왜 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그저 아름다움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힌 환자 자신을 확 깨우는 물음이었다. 그들이 예뻐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웃는 이유는 행복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의 추구는 행복하고 싶은 노력이고, 미용 시술은 코스메틱과 마찬가지로 그 도구인 셈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방법을 메뉴판처럼 쉽게 선택하고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정말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보통의 성형외과나 피부과 간판을 보면 시술 목록을 주르르 나열하거나 시술 전후 사진을 보여준다. 그러나 ‘더 에스'(현 메종프리베)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과 위치 정보가 전부였다. 세상에 예뻐지기 위한 방법은 많지만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다. 왜 자신이 예뻐지고 싶은지 어째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방법을, 오명진 원장은 환자와 함께 고민하고 최선의 처방을 찾아주는 것에 집중했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새로움을 알리다.
오명진 원장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새로움이었다. 어느 병원이나 친절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사람의 진정한 행복을 위하기 때문에 듣기 좋은 말만 찾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법은 많아도 그 방법이 모든 이들에게 동일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지워주는 것이야 말로, 본연의 아름다움과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진료 철학은 연예계에 있어서도 특별한 것이었다. 그 당시 미의 기준은 마치 공장에서 찍어 낸 것처럼 틀에 박혀 있었지만, 연예인 중 특히나 아이돌 그룹의 경우 각각의 개성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오명진 원장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지워주는 처방은 그야말로 둘도 없는 것이었다. 점차 국내외를 불문하고 가장 유명한 연예인들은 물론 연예기획사 대표들까지 그의 진료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더할 것 없이 아름답고 멋진 톱스타가 오명진 원장을 찾는 이유도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아 만족하지만, 숨 가쁜 삶에 지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몸에 염증이 생겼다. 오명진 원장의 처방은 우선 그들의 마음부터 위로하고 달래주는 과정이 첫 번째였고, 그러고 나서 문제가 된 피부나 체형을 살피는 것으로 잃어버렸던 행복을 되찾아주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어진 별명이 ‘소울닥터’였다. 표현이 조금 유치할 수 있지만, 그는 정말로 의사이기 이전에 영혼의 치유자였다.
의사 오명진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내친김에 병원 이름도 ‘닥터오 에스 클리닉(Dr.O S. Clinic)’이라고 바뀌었을 무렵, 그는 당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었던 슈퍼스타K 첫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한다.
연예인 주치의, 소울닥터라는 별명이 알려지다.
방송에 출연한 의사들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오명진 원장의 경우 본인의 병원을 홍보할 목적이 아니라, 이미 유명세가 널리 알려진 연예인 주치의로서 정식으로 방송 출연료를 받는 스타 의사이자 뷰티 디렉터였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슈퍼스타K의 시즌 1부터 7까지 모든 시즌을 고정 출연했고, SBS, KBS, MBC를 비롯한 주요 방송 3사는 물론 겟잇뷰티와 같은 미용 전문 채널까지 다양한 출연 제의를 받느라 정작 가장 우선해야 할 병원 진료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아직 연습생이나 다름 없는, 하지만 머지않아 그 이름을 널리 알릴 미래의 톱스타들에게 오명진 원장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만 개선하는 의사로서가 아니라 내적인 고민과 슬픔부터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새로운 유형의 의사였고, 이러한 진정성 있는 모습에 ‘소울닥터’라는 그의 별명은 국민적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덕분에 지금도 소울닥터를 구글링하면 메종프리베가 나타날 정도로, 오명진 원장과 그의 뷰티에이징 센터를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닥터오 에스 클리닉’은 별다른 마케팅에 의존하지 않아도 운영에 지장이 없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내원 환자의 60% 이상이 톱스타, 연예인, 연예기획사 연습생분들이며 지금도 구성비가 동일하다. 서로 얼굴을 아는 그들이 마주쳐서 민망해 하지 않도록(같은 아이돌 그룹 소속인 경우도 있으므로), 예약 편성 및 프라이빗 에스코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마케팅을 목적으로 연예인 인증샷이 올라오는 병원들이 많지만, 여러 방송 활동을 함께하며 프라이버시에 대한 그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는 오명진 원장은 가능한 드러내지 않기를 당부한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에서 오명진 원장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송 출연은 분명 그를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소중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사람의 삶과 행복을 찾아주는 의사로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안티에이징 센터를 만들어 내겠다는 포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층 더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15년 전 ‘더 에스’를 개원 했던 당시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부산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5성급 럭셔리 호텔 & 리조트 브랜드 ‘아난티(Ananti)’에서, 오명진 원장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한 것이다.
아난티(Ananti), 닥터오와 만나다.
모순된 바람의 조화. 아난티의 관심은 남들과 다른 여행에 있다. 남다른 여행을 원하는 고객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용하고 한적하지만 심심하지 않고, 산과 바다는 좋지만 벌레나 불편함은 싫은, 모순된 바람이 충족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17년 부산 기장에 세워진 럭셔리 호텔, ‘아난티 코브(Ananti Cove)’ 역시 고객의 상반된 니즈를 충족시키는 공간이다. 바다 위의 성을 콘셉트로 만들어진 아난티 코브는, 정정인 휴식과 활기찬 활동을 동시에 누릴 수 있기에, 각자 취향대로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이라는 공간 철학을 중시하는 아난티와, 사람의 삶과 행복을 찾아주고 싶다는 오명진 원장의 진료 철학은 마치 잃어버렸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은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맞물렸다. 이제껏 어떤 사람들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콘셉의 병원이자, 아시아 최초의 휴양 의학 센터 ‘닥터오 & 아난티 프라이빗 클리닉(Dr.O & Ananti Private Clinic)’는 바로 그러한 영감의 맞물림이었다.
웰에이징에서, 뷰티에이징(Beauty-Aging)으로
닥터오 에스 클리닉 그리고 닥터오 & 아난티 클리닉까지 거쳐오면서 오명진 원장의 뇌리를 자꾸만 맴도는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안티에이징이다. 직역하자면 노화 방지 혹은 항노화라고도 불리우는 이 단어가 그는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티에이징에 누구보다도 진심인 사람이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을 수 있지만, 싫어하는 이유를 듣고 보면 납득할 만 하다.
우선 그는 에이징(Aging)이라는 용어가 Anti- 라는 접두사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싫었다. 노화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삶에 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란 이러한 현상을 무작정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러한 노화마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 시킬 수 있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명진 원장의 오랜 벗이자 패션 모델인 지롤라모 판체타(Girolamo Panzetta)가 그러한 본연의 아름다움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25년이 넘도록 방송 및 모델 활동을 지속해온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음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인으로 등극할 만큼 일본 남성 패션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로서, 2001년 창간한 일본의 인기 패션 잡지인 ‘레옹(LEON)’의 전속 모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패션 잡지들이 다양한 모델을 내세워 새로운 패션을 선보이는 반면, 레옹은 특이하게도 지롤라모 판체타라는 단 한명의 모델에 집중하여 꾸준한 인기를 지속해 왔는데, 이는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욱 멋지고 댄디한 매력을 보여주는 그의 본연의 아름다움에 일찌감치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같은 좋은 인물들과 인연을 쌓아온 영향일까. 아니면 그 당시 문화적 영향력이 상당했던 웰빙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오명진 원장은 처음엔 ‘웰에이징(Well-Aging)’이라는 신조어를 떠올렸다. Well. 의미 그대로 잘, 좋게, 제대로 라고 해석할 수 있는 그 뜻은, Aging 이라는 ‘나이 듦’을 사람들에게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연결고리 라고 생각되었다.
웰에이징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좋았지만, 오명진 원장의 마음 한편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 의미 그대로, ‘나이 듦을 잘 하는 것’이 그가 평생을 추구하는 모토가 아닐 터였다. 사람의 삶과 행복을 찾아주는 방법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에 있다면, 결국은 ‘나이 듦 마저 아름답다’고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의 끝에 ‘뷰티에이징(Beauty-Aging)’이 떠올랐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법한 두 가지 단어가 신비롭게 맞물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가치를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다.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바로 이 공간, ‘메종프리베(Maison Prive)’는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